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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보수 자유주의
Simon Creek
2021-10-20 15:56

게임은 실제로 자유로운가

게임은 자유로이 하는 것이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하기 때문에 게임이라고 다수의 놀이학자들은 입을 모았다. 누군가 이를 특별히 정의하지 않더라도 게임을 하는 자들을 모두 이에 동의한다.

그런데 단순히 게임을 하도록 강요하는 특정 인물이 없다고 해서 게임은 자유롭게 하는 것일까. 보수 자유주의 관점에서는 사실, 게임은 자유롭지 못하다.

우파, 보수, 자유주의

우파와 보수주의는 자주 혼용되어 사용된다. 하지만 우파와 보수주의는 동의어가 아니며 전혀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다. 먼저 우파는 사회에 개인이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발전보다는 집단의 발전을 우선시한다. 집단이 발전할 수록 공리는 더 커지고 이는 다시 개인의 더 큰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정치적 신념이 바로 우파의 핵심이다. 이는 집단을 개인의 집합으로서 이해하는 좌파와 대비된다. 그러므로 좌파에게 있어서 발전이란 평균값만의 상승이 아닌 중앙값, 최빈값이 같이 상승되어야 한다.

한편 보수주의란 말 그대로 보수적으로 행위할 때에 그렇지 않을 때 보다 발전의 기회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진보적으로 변화하는 것 자체가 사회 발전의 퇴행을 가져온다는 것으로서 이해한다.(이것은 일종의 레토릭으로, 실제로는 진보==악수[惡手]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파이면서도 보수주의자가 아닌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다. 사회 발전이 우선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진보적인 정치행위를 맹목적으로 거절할 필요는 없으며 사회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점진적이고 선택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유주의라는 사상도 우파나 보수와는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다. 우파에도 자유주의가 있듯이 좌파에서 자유주의가 있다. 다만 그 방향성이 다를 뿐이다. 좌파의 자유주의는 그 극단에 아나키즘을 기준으로 두는 방임주의를 표방한다. 정부로부터의 개입 등 일체의 인위적이고 권위적인 개입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한다. 한편 우파의 자유주의는 그 기저에 보수적 가치관을 내포하는 "자연적" 자유를 추구한다. 이는 자유경제등을 비롯한 경제적 개념과는 궤를 달리하는 뿌리깊은 자유주의이다.

자연스럽다는 것

보수적 자유주의는 기독교적 사상을 근거로 하고 있다. 즉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자유로운 상태라는 명제를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이 자연스러움은 서양권 정치의 다소 케케묵은 진보 보수간의 논쟁의 쟁점이기도 한데 보수우파는 자연스럽지 않음을 들어 "옳지" 못한 것을 배척했고 진보좌파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반박을 이어갔다. 가령 동성애가 그것이다.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고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이에 반박하는 논리로서 사실 동성애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자연계에서도 종종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은 자연에 있느냐를 구분하는 개념이 아니었다. 자연(nature)의 어원은 "natura"(더 나아가면 gnasci) 로서 종교적 함의를 가지고 있는 단어였다. 이 때의 natura 개념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Procreation)하고 계속 이어나가는 것을 의미했다. 동식물이 번식하여 식생을 이루는 것이나 땀과 노력을 들여 원자재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일 등이 바로 자연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지 않는 고리대금(usury)과 같은 직업은 천시되었고 동성애(다만 주로 남색)는 자손을 잉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배척되었다.

자유는 방임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주의는 방임주의와는 구별된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해서 내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유롭다는 것은 내가 구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나의 의지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 자유주의에서는 억제와 규율이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롭다. 자유를 파괴하는 욕구를 억제하고 가치 창출로 유도하는 부자유가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게 한다.

가령 마약과 같은 강한 중독성 물질은 금지하는 것이 더 자유롭다. 왜냐하면 마약은 사용자를 마약의 노예로 만들어 마약 이외의 행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욕구(마약)의 노예가 된 개인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마약을 할 자유는 보수적 자유주의에서 인정되는 자유가 아니다.

자살 또한 자유가 아니다. 자살이란 모든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이며 되돌이킬 수 없는 행위이다. 그러한 연유로 자살은 죄(Sin)로서 금지되어 왔다.(Crimes against nature)

게임은 자유로운가?

게임에서 보수 자유주의를 언급할 만한 논점이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게임 시스템 중에서 가장 만연해 있는 시스템 중 하나인 기간 한정 시스템이 바로 이 보수 자유주의를 크게 부정하는 시스템이다.

기간 한정 시스템이란 일정 기간안에 노력이나 특정 재화를 투입하지 않으면 향후 다시는 동일한 보상을 획득할 수 없는 체계를 의미한다. 기간 한정 시스템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이벤트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많은 재화를 투자하도록 유도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그러나 기간 한정 시스템은 자유로운 시스템인가? 플레이어들은 자기 의지에 따라 이벤트에 참여하고 재화를 투입한다고 하지만 보수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그들이 자유롭다고 볼 수 있는가가 쟁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플레이어들은 욕구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자유가 있는가를 논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필자의 답을 하자면 "아니다" 이다.

기간 한정은 플레이어를 구속한다

사람은 누구나 욕구를 가지고 살아가며 자신의 욕구를 어떤 때에 어느 정도만큼 해소할 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기간한정은 그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한다. 지금이 아니면 그러한 욕구는 영원히 해소될 수 없다. 기간 한정 이벤트는 플레이어를 구속하여 욕구의 노예로 만든다. 또 이벤트 기간에는 해당 이벤트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생산적인 활동을 방해한다.

좀 더 자유로운 기간 한정

자유로운 기간 한정이란 지금 참여하지 않아도 욕망을 해소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는 기간 한정 이벤트를 의미한다. 즉 논리관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실제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형태를 취할 수는 있을 것이다.

먼저 기간 한정 이벤트는 보상의 획득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보상은 언제든지 다시 획득할 수 있어야 하며 획득 가능한 기간이 한정 시기와 이격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한정된 기간 동안 보상 획득의 난이도나 재화의 소모량을 변경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연적" 선택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한정된 기간이 아닌 때에는 실질적으로 필요한 재화와 노력의 양이 극단적으로(drastic) 차이가 난다면 이는 실제로는 플레이어를 억제하는 것이고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사담

필자는 특별히 보수주의나 우파에 치중되어 있지는 않다. 굳이 따지자면 중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공리주의가 설득적이라고 생각하고 때로는 극단적인 부의 분배에 분노하는 대중들의 심정을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특정 정치적 사상에 일관된 동의를 보내지는 않는다.

본 글을 작성하게 된 것은 게임에 대한 정치적 요구가 대부분 좌파에 치우쳐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임의 우파적 올바름에 대한 논의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 점이 특이하다고 보고 한번 직접 보수적 자유주의 시점에서 게임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