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기획은 변화하지 못했다.
게임 기획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는 게임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고 또 그 구조에 따라 게임의 내용을 확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 기획은 종래의 비즈니스 기획과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므로 여러 사람과 머리를 맞대어 팔릴만한 상품 을 만들어낸다는 전통적인 기획법 또한 게임 기획에서 폭넓게 적용되어 왔고 지금의 기획법과 한 세기 전의 기획법은 그 방법론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 정적인 문서를 통해서 기획의 내용을 정리하고 그 문서를 개발인력에게 전달한다. 설명이 부족하거나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 때에는 추가로 대화의 장을 마련하여 그 간극을 해결한다. 이 방법은 효과적이었고 변화의 필요성은 요구되지 않았다.
그 결과 게임 기획은 게임 개발에서 가장 구시대적이고 성가신 작업이 되었다. 게임 기획이란 끝이 없는 고서 더미를 파헤치는 역사적 작업이 되었고 "선조"의 지혜를 가늠하면서 전통을 지켜나가는 일이 되었다. 게임의 초기 메카닉을 존중하고 또 그것을 확장하려는 노력 자체는 게임 개발에 있어서 고려해야 하는 당연한 요소이지만 문제는, 그러한 메카닉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거나 무분별하게 파괴하는 데 있고 더 나아가 이러한 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기반조차 현재의 게임 기획은 가지지 못한 상황이다.
지금의 게임 기획에는 맥락이 없다.
게임 기획에는 분명 맥락이 있다. 그러나 게임 기획의 맥락에는 연속성이 결여되어 있고 연속성이 없는 맥락에는 생명이 없다. 게임은 수시로 변화하는데 그러한 변화의 맥락들이 서로 의미를 통해서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그러한 맥락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죽은 맥락에서는 게임 기획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렵고, 더 나아가 기획을 변경하고 발전시키기는 더욱 어렵게 된다.
문제는 원인은 게임 기획자들이 게으르거나 무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의 게임 기획으로서는 연속적인 맥락을 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연속적인 맥락이 포함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특징들이 필요하다.
- 게임 기획의 시작부터 현재를 통틀어 모든 내용의 변경을 확인할 수 있을 것
- 게임 기획의 모든 변경 사항이 그 이유와 함께 열람될 수 있을 것
- 게임 기획에 참가하는 다양한 기여자들의 기여 사항이 명확히 구분될 수 있을 것
그런데 지금의 정적 문서로는 상기된 특징들을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적 문서는 콘텐츠와 표현(Representation) 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한 표현의 변경과 콘텐츠의 변경을 구분할 수 없다. 따라서 형상 관리 시스템의 도움을 얻더라도 콘텐츠 변경의 내용만을 추적하고 확인하기 위해서는 형상 관리 시스템의 목적을 퇴색시키는 텍스트 기반 메타 정보를 파일 또는 변경 기록에 포함시켜야 한다. 결과적으로 정적 문서 기반 게임 기획으로는 연속성 있는 맥락을 포함할 수 없다.
게임 기획은 변화가 필요하다.
게임 기획은 변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지금으로서 게임 개발이 불가능 하지 않다라는 이유는 변화의 당위성을 부정하기에는 타당하지 않다. 더 효율적인 게임 개발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게임 개발의 연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게임 기획은 변화해야 한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표현 중립적인(Representation agonistic) 포맷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의 게임 기획 표준은 pptx와 docx 인데 둘다 xml 기반의 표현 중심(Representation oriented) 포맷이다. 따라서 기획의 내용만을 추적하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md와 같은 표현 중립적인 마크업 언어를 사용하여 기획을 작성하고 pptx나 docx와 같은 포맷으로 컴파일 하는 프로세스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한 게임 기획은 형상 관리를 초월하여 영향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영향 관시 시스템이란 파일, 모듈, 시스템 간의 영향을 자동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으로서, 하나의 유닛에 변화가 생길경우 그 변화가 가져올 수 있는 영향을 자동으로 추적하고 개발자에게 고지(alert)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영향 관리는 시스템 간의 상호 의존성이 매우 깊게 작용하는 게임의 개발 및 유지 보수에 큰 장점을 부여한다.
변화를 넘어서
게임 기획이 전술한 변화를 기꺼이 포용한다면 게임 기획은 그 이상의 생산성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바로 게임 기획의 자동화 그리고 CI(Continuous integration)이다. 표현 중립적인 포맷을 사용하게 되면서 다양한 개발 도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게임 기획은 정적인 형태에서 벗어나서 동적인 형태로 변활될 수 있다. 게임 기획 문서는 개발자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HTML로 출력될 수 있으며, UML, 플로우차트, 인물간 다이얼로그 등 다양한 시각 자료로서 활용될 가능성을 가진다.
뿐만 아니라 게임 기획 자료는 전통적인 수동적 전달 방식에서 벗어나 자동화의 수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게임 기획 콘텐츠 가공성이 혁신적으로 증진됨에 따라 해당 콘텐츠를 다양한 표현 형태로 가공하고 또 동시에 게임 기획의 사용자에게 자동으로 전달(operate)한다. 사용자들의 기획에 대한 영향 분석과 피드백 또한 자동화되며 개발 부서 간의 소통 불완전성에서 기인한 병목(bottleneck)은 최소화 되어 개발 프로세스의 혁신을 가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