셧다운제는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소위 낚시성 글이 이상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큰 논쟁의 소재가 되는 담론에 대해서는 대중의 이목을 끌기에 매우 좋다고 효과적이다. 필자가 지식인이라면 이런 언행을 자제해야 겠지만 어디까지나 블로그에 불과한 글에 신중함의 요구가 상당히 면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컨대 셧다운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셧다운제의 필요성에서 "셧다운제"는 그 제도적 개념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학부모의 청소년 교육 권리 보장을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당위성이 있는가를 대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수준에서 분명히 그렇다고 생각한다.
셧다운제는 청소년 자유 담론의 문제가 아니다
셧다운제가 청소년으로 하여금 자유로이 게임을 할 수 있는 권리의 창설을 저해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셧다운제의 제정 목적이 청소년의 권리를 억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학부모의 교육권을 담보하는 데 있는 것이다. 셧다운제가 가져오는 효과에만 집중하다보면 제정 목적과 정책 의제의 설정 과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셧다운제가 학부모의 교육권을 보장하다는 것인가. 그 논리는 셧다운제 그리고 한국 게임 문화에 대한 학부모들이 전제하고 있는 인식을 알아야 한다.
한국 게임 문화 인식
셧다운제의 기반이 된 한국의 게임 문화 인식을 짧게 정형화 해보면 다음과 같다.
- 무료 게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 콘솔이 아닌 PC로 게임을 한다.
- PC방 문화가 게임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인식은 다소 구시대적이지만 현재에도 큰 문제없이 통용되는 인식이다. (다만 한 가지 큰 차이는 모바일 플랫폼의 차이인데, 이 모바일의 차이가 현행 게임 산업 규제 정책의 괴리를 크게 증가시키는 데 일조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에서 도출될 수 있는 한 자기 논리는 바로 학부모들이 청소년들의 게임 문화 생활을 관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한국 게임 문화와 학부모의 관리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지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차이는 해외의 사례와 비교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서양 게임 문화와 부모의 교육권의 관계
서양 게임 문화, 구체적으로는 유럽과 미국을 포괄하는 소위 선진국들의 게임 문화 인식을 정형화 해보면 다음과 같다.
- 유료 게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 PC가 아닌 콘솔 위주로 게임을 한다.
- 집에서 하는 게임이 게임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러한 인식은 셧다운제가 출범할 당시의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므로 포트나이트와 같은 무료 게임이나 모바일 플랫폼이 대두되기 이전의 인식인 점을 전제한다. 각각의 인식(특징)이 어떻게 학부모 교육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지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유료 게임 위주로 구성된다는 것은, 부모가 게임의 선택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은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게임을 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원하는 게임을 부모에게 사달라고 부탁하거나 아니면 적은 용돈을 모아서 사야한다. 또 다른 방편으로는 부모의 돈이나 카드를 통해서 "몰래" 구매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들킬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단순히 게임을 몰래 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자기게 되어버린다. 결론적으로 서양 게임 문화에서는 청소년들이 직접 게임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고 대부분 부모의 손을 거쳐서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 결정된다.
PC가 아닌 콘솔 플랫폼 위주로 게임을 한다는 것은 게임의 플레이 장소가 TV가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게임의 화면을 출력하기 위한 디스플레이가 필요하다. 그리고 2010년대(위의 인식이 전제하고 있는 시기)에는 TV가 매우 대중적인 가전제품이었다. 그러다보니 콘솔을 구매하면서 새로운 디스플레이를 같이 구비하기 보다는 이미 있는 TV에 물려 사용하는 일이 대다수였다. 결과적으로 자녀의 게임 플레이 환경은 항상 부모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었고 부모는 자기 자녀가 무슨 게임을 하고 또 얼마나 하는 지를 자녀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 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자녀가 자기 방에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다른 디스플레이를 추가로 구매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또한 결국 부모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더해서 게임을 집에서 한다는 것은 자녀의 동태를 확인하기 더욱 수월하게 만든다. 자녀들이 게임을 하기 위해선는 자기 집의 콘솔을 사용하거나 친구 집에 있는 콘솔을 사용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더라도 최소한 한 가정의 부모가 자기 자녀의 게임 환경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게임 플레이를 숨기기 위한 자녀들의 여러 노력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만을 위한 외부의 전용 공간이 있는 것과 비교하면 그 정도는 훨씬 작은 수준이다.
한국 게임 문화는 부모에게 최악이다
이에 반해서 한국이 게임 문화(인식)은 부모의 교육권 확보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먼저 한국의 게임들은 대부분 무료 게임이다. 그 뜻인 즉슨, 부모로 하여금 자녀가 어떤 게임을 하게 할 것인가를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자녀들은 제한 없이 무료 게임들에 접근할 수 있으며 나이 제한이 있는 게임을 하기 위해 부모의 신원을 도용하는 "위험"한 행위조차 부모의 재력을 도용하여 게임을 구매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다. 그러므로 자녀가 무슨 게임을 하고 있는 지를 직접 보지 않는다면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조차 없으며 자녀로 하여금 어떤 게임을 하게 할 것인지 조차 관리하기 어렵다. 그리고 포털 등에서 제공하는 자녀 관리 시스템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데 애초에 부모들은 포털에 대한 이해도 조차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녀가 스스로 그러한 서비스를 자기 부모에게 인지시킬 것은... 솔직히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한국의 게임은 주로 PC로 플레이한다. 이 플랫폼의 차이는 또 하나의 큰 문화적 차이를 만들어 내는데, 바로 자녀들이 자기 방에서 게임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두꺼운 전공서적 한 권에 맞먹는 크기를 가지는 게임 콘솔에 비해서 PC가 요구하는 공간은 압도적으로 거대하다. 먼저 PC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책상이 필요하다.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스피커, 본체, 전선을 꽂을 멀티탭과 인터넷 연결을 위한 회선 등, PC 설치를 위해서 소모되는 공간은 매우 크다. 그 결과 PC를 거실에 설치하게 되는 것은 상당히 부담이 된다. 이미 거실에 많은 가구들이 위치해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거실 공간이 충분히 넓지 않기도 하다. 가령 21평 정도의 집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소파나 TV 그리고 가구를 몇 개만 두어도 책상을 하나 더 놓기는 어렵다. PC가 자녀의 방에 위치하면 부모는 자녀가 게임을 얼마나 하는지, 어떤 게임을 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워진다. 수시로 자녀의 방문을 열어 확인하는 것이 한 방법이겠지만 그것 또한 바람직한지 다소 회의적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에는 PC방이라는 문화가 있다. PC방은 PC를 사용할 수 있도록 대여하는 업이지만 실제로는 게임을 하기 위한 전용공간으로서 취급된다. PC방의 이용대금은 청소년도 충분히 지불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에 자녀들이 받은 용돈만으로도 게임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다만 개인에 따라 만족할 만큼 하지는 못할 수는 있겠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는 부모가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자녀들의 동태를 확인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집에 있는 것 조차 아니거니와 자녀가 부모에게 자기 활동을 설명하지 않거나 혹은 거짓으로 설명한다면 부모로써는 자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의 게임 문화는 일명 피어(Peer) 문화 성향이 강한데, 다시 말하면 게임을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또래 집단과 함께 하는 집단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어 문화의 상징성과 같은 곳이 바로 PC방이다. 자녀로서는 게임에 적극적이지 않더라도 또래와 어울리기 위해서 게임을 하게 된다.
이렇듯이 한국의 게임 문화는 부모로서는 불안하기 그지 없다. 자녀가 지금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하는지를 알기 어렵고 그렇다고 그것을 계속해서 확인하자니 매우 수고롭고 때로는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다.
부모가 자녀의 게임 환경을 꼭 알아야 하는가
사실 부모가 자녀의 게임 문화에 관리할 권원이나 당위성이 없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자녀 게임 환경 통제 행위에는 반박하기 매우 어려운 전제들이 있다. 첫 번째로 부모는 자기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기 위하여 자기 신념에 따라 양육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서 자기 결정 능력이나 객관적인 인식 및 사고에 흠결이 있다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이 전제들을 사회적 합의로서 받아들이고 있고 필자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부모의 통제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셧다운제는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셧다운제의 형태는 자녀들로 하여금 특정 시간 이후로는 아예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하는 식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앞서 언급되었던 부모들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기 위한 정책적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셧다운제는 실제로 자녀들로 하여금 게임 시간을 줄이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오히려 게임 개발 산업에 대한 부담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므로 셧다운제는 두말할 것 없이 실패한 정책이고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셧다운제가 사라진다고 위에서 언급한 부모들의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셧다운제 와 같은 정책에 대한 요구는 꾸준히 계속될 것이다. 셧다운제는 부모의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한 완전한 정책이라기 보다는 완화하는 데 그치는 내용이었을 뿐이었다.
노력하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셧다운제 폐지 담론에서 자주 나오는 말은 부모들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 자기 자녀들을 관리하지 못하는 것을 제도에게 떠 맡긴다고 하는 것이다. 문제는 부모라고 하더라도 자녀만을 위해서 모든 자원과 시간을 쏟을 수는 없다는 것이고, 설령 그러한 "노력"을 한다고 할 지라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도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현행 법체계에서는 이러한 간격을 해소하고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다양한 법제정과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일한 차원에서 셧다운제의 부모의 양육권을 보장이라는 제정 의의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동일한 차원의 다른 정책과는 상이한 잣대를 들이미는 존경성 정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셧다운제 폐지에 있어서 "노력"이라는 개념을 포섭해서는 안 된다.
결국은 부모의 양육권 문제이다
그러므로 셧다운제 폐지 담론이 사회적 합의를 얻고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부모의 양육권 보장을 위한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다만, 법제정이 항상 일반 의식과 함께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외국에는 없는 구시대적 규제 정책으로서 셧다운제를 파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외국의 게임 환경은 학부모의 양육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나 그 비교 대상이 주로 유럽, 미국을 위주로 하는 소위 선직국들이기 때문이다) 게임 산업에 대한 악영향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콘솔 게임 문화권 만큼의 부모 양육권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셧다운제 담론이 나아가야할 방향이다.
마치며...
본 내용은 대학교 과제 내용을 블로그 용으로 다소 짧게 수정한 것이다. 당시의 주제는 게임 등급 분류에 대한 담론이었는데 셧다운제의 담론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의 양육권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권리 중에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셧다운제 담론에서는 마치 구시대적인 개혁의 대상으로서만 여겨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명의 게이머로서 그리고 게임 개발자로서 셧다운제가 가지는 부정적인 결과에 크게 공감하지만 동시에 그 방향성이 한 집단의 의견을 묵살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P.S.
평소에 VSCode로 블로그 글을 작성하기 때문에 오타나 맞춤법등을 고치기 어려운 편인데 주제가 주제다 보니 퇴고를 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하지만 어차피 방문자가 없을 것이기 때문에 고민을 접고 그냥 올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