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은 현상이다.
인플레이션이란 돈의 가치가 감소하는 현상이다. 인플레이션은 다양한 이유에서 발생하며 경제활동이 있는 이상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현실의 경제 환경에서 볼 때 인플레이션은 그 개념적으로 좋다, 나쁘다 말하기는 어렵다. 인플레이션이 오면서 물건의 가격이 오르더라도 임금이 같이 오르게 된다면 오히려 인플레이션은 경제의 성장을 견인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체감 물가는 오르게 되며 소비 심리는 축소되고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떨까? 게임의 인플레이션은 가치 중립적일까?
게임의 인플레이션은 항상 나쁘다.
게임의 인플레이션은 필연적으로 부정적이다. 그 이유는 게임의 경제가 현실의 경제와 동일한 유동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노동, 물건이 가치가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게임은 근본적으로 통제된 경제이므로 노동이나 물건의 가치가 재화의 가치에 반응하여 변화하지 못한다. 따라서 재화의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지는데 재화가 생산되는 양은 그에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예전과 똑같은 콘텐츠를 진행하더라도 구매 할 수 있는 물품의 수나 질이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노동 가치가 점점 떨어진다는 것은 매우 부정적인 게임 경험이다. 이러한 부정 경험은 결국 노동의 가치를 저하하며 노동에 대한 유인을 떨어트린다. 그런데 문제는 해당 노동이 단순하게 재화를 찍어내는 윤전기의 역할 이외에도 게임에 유통되어야 하는 여러 "물건"들의 수급처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악순환을 만들어 공급을 줄이고 줄어든 공급에 따라 물건의 가치는 더 오르면서 다시 노동의 가치를 떨어트린다.
게임에서 노동의 가치, 재미
게임과 노동은 그리 잘 맞지 않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게임에는 매우 많고 다양한 노동이 이루어진다. 간단한 퀘스트부터 사냥 등의 여러 콘텐츠 등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일종의 노동이다. 그러므로 노동의 가치가 떨어지면 노동의 재미가 떨어지고 더 나아가 게임이 재미 없어진다. 게임을 재미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은 매우 부정적이다.
또 하나, 격차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은 격차의 문제를 만들기 때문에 유해하다. 게임 속의 모든 노동이 재화를 보상으로 부여하진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게임의 콘텐츠가 재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플레이션은 코어 게이머를 중심으로 경제를 재구성한다. 콘텐츠에서 제공하는 재화의 가치는 계층과 무관하게 떨어지지만, 콘텐츠에서 제공하는 물건의 가치는 동등하게 감소하지 않는다. 이는 물건에 대한 수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인데, 하위 콘텐츠 보상에 대한 수요는 상위 콘텐츠 보상에 대한 수요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하위 콘텐츠 물건의 가치는 매우 감소한다. 동일한 시간 대비 하위 콘텐츠 물건의 가치는 더욱 떨어지며 유저 계층 간의 재화 밸런스를 해치게 된다. 하위 유저들은 상위 유저들을 더욱더 따라잡기 어렵게 되며 계층 간 격차는 심화된다.
해결책은 현실과 달라야 한다.
현실에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간단하게는 시중에 풀린 돈을 소각하는 것이다. 은행 금리를 올리거나, 세금을 올리는 등의 긴축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게임에도 매우 손쉽게 적용할 수 있다. 수리비를 올린다거나, 아이템 가격을 올리는 등의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부정적인 유저 경험을 창출한다. 물론 금리 인상과 세금 인상 또한 매우 부정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러한 정책적 행위가 곧바로 국민의 이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 이탈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인플레이션의 해결책은 플레이어에게 부정적인 경험을 제공하지 않아야 하며 최소한 게임의 운영 중에 그것이 부정적으로 바뀌는 일은 피해야 한다.
전통적 대응법
일반적으로는 재화의 사용처를 골고루 그리고 결합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보편적인 게임의 예방법이다. 가령 아이템을 장착할 때마다 주기적인 사용료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주로 수리비로서 표현된다. 또 하나는 콘텐츠 비용으로서 재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아이템을 강화한다던가 지역을 이동하거나 또는 콘텐츠 입장 비용으로서 설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있다면 다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의 일반적인 대응책은 다음과 같다
- 새로운 콘텐츠 추가를 통해 판올림하거나 재화 소모처를 제공한다.
- 상시 이벤트 등을 통하여 유저 간 격차를 축소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인플레이션이라는 현상 자체를 해소하는 방법이다. 신규 콘텐츠를 통해서 새로운 아이템들을 제공하고 기존의 질서를 벗어난 새로운 경제 질서를 제시한다.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이지만, 새로운 판올림을 실행하는 것 자체가 게임의 생태계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접근에 있어서 많은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다. 즉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코어 유저 위주로 구성된 경제 체제 속에서 후발주자들이 도태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벤트의 형식으로 성장에 필요한 아이템이나 혹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편의를 큰 폭으로 제공한다. 이 경우에는 게임의 질서를 재구성하는 모험을 하지 않더라도 인플레이션의 악효과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다만 콘텐츠의 진행 순서나 속도에 있어서 기획 의도와 벗어나게 되기 때문에 플레이어의 게임 몰입감을 방해하거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또 다른 접근법, 재화의 용도상 분리
전통적인 위의 방법들과 더불어 지금의 게임들은 새로운 방법을 자주 채택하는 편이다. 바로 재화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이다. 게임 내의 콘텐츠는 오로지 통제된 환경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재화를 지급한다, 따라서 콘텐츠에서 지급한 재화는 유저와의 거래에는 사용할 수 없다. 한편 게임은 전자와 구분되는 상황인 통제되지 않은 환경, 즉 자유 거래에서 사용 가능한 재화를 설정한다. 이 재화는 오로지 유저와의 거래에서만 사용되며 게임 콘텐츠 내에서는 자체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이 방법은 매우 효율적인데 새로운 콘텐츠의 추가가 경제 질서에 주는 영향이 최소화되기 때문에 개발사는 적은 부담으로 콘텐츠를 추가할 수 있게 되고, 게임의 재화는 순수하게 자유 경제 속에서 유통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유동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가치가 형성된다. 해당 화폐의 가치는 현실의 재화(원, 달러)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일종의 통화스왑으로서 이해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의 발생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현실의 재화의 안정성이 유지되는 이상 게임 재화의 가치 또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